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1908년 프랑스 샹틀루에서 태어났다. 1931년 경 우연히 사진을 배우게 되어 아프리카 여행에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프랑스 전역과 이태리,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본격적인 사진제작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초기 대표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이 지역에서 촬영된 것들이다. 그러나 사진 못지않게 영화에도 큰 흥미를 가져 1936부터 1939년까지 영화제작에 몰두하는데, 1937년에는 내란중인 스페인에 가서 사진도 찍으면서, 공화국 병원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생명의 승리]를 만들어 세상에 소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군의 영화사진부대에 육군하사로 복무하던 카르티에-브레송은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세 번의 시도 끝에 극적으로 탈출하여 파리에 돌아온 그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활동하면서 나치 점령과 파리 해방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르티에-브레송이 세계 사진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이다. 그는 먼저 1947년에 절친한 친구들인 로버트 카파, 데이빗 시모어, 조지 로저 등과 함께 취리히에서 사진통신사 을 결성한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세계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50년대를 카르티에-브레송의 시대로 이끌어 간다.
1952년에 저 유명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 출간되자 세계사진은 바야흐로 ‘결정적 사진’의 열풍에 빠져버린다.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보도사진가로 세계 전역을 다니면서 독특한 사진세계를 선보인다. 그러나 친구 데이빗 시모어가 취재도중 살해되자 사진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1966년에는 자신이 창립한 매그넘과도 결별하고, 1974년부터는 그림에만 전념하게 된다.
카르티에-브레송은 평생 소형 라이카 카메라만 사용했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인간의 시선으로 세상과 만났기 때문에 인간다운 시선, 가장 인간다운 삶의 정취가 배어나는 표준렌즈만을 고집했다. 또 자연의 빛, 찰나의 빛 아래서만 사진을 찍었고, 결코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았다. 촬영 당시의 느낌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원래의 느낌과 달라지는 어떠한 변형, 조작, 왜곡 행위도 용인하지 않았다.
늘 카메라를 삶과 마주한 눈의 연장(延長)으로 생각했으며, 사진을 일기이자 삶의 메모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계사진은 모든 사진적 철학이 내재된 그의『결정적 순간』을 사진의 교과서로 받아들였다. 브레송이 사진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삶의 한순간을 예리하게 관통하는 의식과 인식의 교호작용이며, 사진가와 대상이 찰나적으로 하나가 되는 생의 순간이다. 이것들을 오늘날까지 세계사진은 가장 높이 평가한다. 96세의 거장 카르티에-브레송은 현재 파리에서 살고 있으며, 20세기 사진사의 살아 있는 전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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